‘내 마음을 훤히 꿰뚫어 보려나? 내 머릿속 생각까지 읽어버리면 어떡하지?’
인터뷰이를 결정하고 나자 마음이 유독 쿵쾅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시청률 50%의 대기록을 달성한 드라마 ‘올인’ 주인공 김인하(이병헌 분)의 실제 인물 차민수 한국프로기사협회 회장이기 때문이다.
라스베이거스를 흔들어놓은 세계 빅3 포커플레이어, 무려 11년(1986∼97) 동안 포커 수익 세계 1위, 프로바둑기사, 풍운아…. ‘비범한’ 그의 이미지가 그와의 만남을 더욱 설레게 했다.
‘올인’은 SBS가 2003년에 방영했지만 지금까지도 회자되거나 패러디될 만큼 명작으로 남아 있다.
‘언젠가 널 다시 만날 그날이 오면/ 너를 내 품에 안고 말할 거야/ 너만이 내가 살아온 이유였다고/ 너 없인 나도 없다고…’ 김형석 작사·작곡의 주제가 ‘처음 그날처럼’은 여전히 노래방 페이버릿 송이다.
지난 2일 그가 세계일보를 찾았다. 31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처음 만나 회의실로 옮겨 이야기를 나눈 뒤 1층 로비에 내려가 헤어질 때까지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았다. 가만있어도 웃는 상이다. 타고난 포커페이스다. 원래 잘 웃는 습관은 그의 포커 인생에 큰 힘이 되었단다. 망한 패가 들어와도 해피 페이스, 좋은 패면 당연히 해피 페이스이니, 상대 플레이어들이 그의 속마음을 읽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한가지 더 놀라운 것은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외모다. 그는 올해 칠순을 맞았다. 이 또한 포커페이스 아닌가.
그는 1986년 여름을 잊을 수 없다. 7일 동안 밤을 지새운 처절한 포커 게임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매일 15시간 씩 105시간이 넘는 대장정 끝에 그는 세계 1위 칩 리즈를 쓰러뜨리고 전리품 50만달러를 챙겼다.
1976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가 45년간의 현지 생활을 정리하고 올 초 영구 귀국했다. 대한민국과 아시아로 무대를 옮겨 일흔의 나이에 펼칠 새 꿈은 무엇일까.
“텍사스 홀덤은 2028년 LA올림픽 시범종목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내 사행성 시장의 규모가 대략 추산해 봐도 80조원을 넘어요. 음지에 내버려두기에는 그 규모가 너무 크다는 얘깁니다. 홀덤을 마인드스포츠로 받아들이고 하나의 스포츠산업으로 인정해 세금을 부과하면서 발전시켜 나가야 해요. 국내 포커플레이어들의 실력을 키워주는 것은 국가 차원에서도 유리한 선택입니다.”
포커의 대중화, 건전화, 스포츠화를 위해 그가 직접 나섰다.
“코로나19 탓에 어둡고 힘든 터널 속을 지나는 지금이야말로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성공과 성취가 빠른 법이니까요.”
연예인으로 대성하려면 ‘끼’를 타고나야 하듯 바둑에서는 ‘기재’가, 포커에서는 ‘카드센스’가 필요하다. 카드센스란 카드를 이해하는 독해력을 말하는데, 하나를 배워 열을 터득하는 재능이다.
“두둑한 배짱도 기본이죠. 만용과는 다른 것인데, 어려운 상황에서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용기를 뜻합니다. 수학 능력도 필수예요. 초를 다투는 순간에도 확률을 정확히 계산해 내 유불리를 따져봐야 하니깐요.”
상대방의 패를 읽어내는 판단력 또한 반드시 갖춰야할 덕목이다. 기억력도 빼놓을 수 없다. 딜러가 카드를 걷어갈 때 순서를 외워두어야 한다. 잘 섞이지 않은 경우 외워둔 카드 몇 장이 순서대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절제력이다. 상황에 따라 져도 털고 일어날 줄 알아야 한다. 이는 프로가 지녀야 할 절대 요소 중 하나다.
그는 난리 통에 태어났다. 1·4후퇴 때 아버지를 여의고, 1951년 1월15일 수원 인근 발안장터에서 세상의 빛을 보았다. 강한 어머니 덕분에 어릴 때부터 이것저것 많이도 배웠다. 운동은 쿵후·수영·스케이트·탁구, 음악은 바이올린·피아노·기타였다. 바둑도 그때 배운 것 중 하나다.
어머니는 어린 민수에게 항상 ‘말씀’하셨다.
“돈이나 물건은 남이 훔쳐갈 수 있지만 네 머릿속에 있는 것은 도적질할 수 없다. 배운 지식이나 기술은 네 몸과 머리에 항상 남아 있는 것이다.”
어릴 땐 노는 시간이 적어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복이었다.
“어머니는 단돈 1000원짜리 백반을 드시면서 장학금으로는 2억, 3억원씩을 흔쾌히 내놓는 분이셨어요. 가진 사람이 베풀며 사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제게) 다 크면 큰 나무가 되어 사람들이 네 그늘에서 쉴 수 있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도 미국에 건너온 직후에는 고난의 세월을 보냈다. 주유소에서 일할 땐 3달러 79센트의 기름값을 받아내기 위해 갱들과 목숨 건 싸움을 벌였다. 페인트칠을 했는가 하면 술과 식료품을 파는 가게를 열어 새벽까지 일했다. 이혼의 아픔을 겪었고, 문전박대도 당해봤다. 그러다 카지노 고용 플레이어로 일하면서 포커로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다. 기본부터 배우고 터득하며 실력을 다져나갔다.
고수의 반열에 오른 뒤로는 돈이 너무 쉽게 들어왔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렵다고 들으며 자란 탓인지 주어진 부가 장차 지옥에 갈 것이라는 예언처럼 느껴졌다. 남에게 없는 재능을 주셨으니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며 살라는 뜻이구나. 그는 수입의 대부분을 주변 사람들과 바둑 관계자, 그리고 교회 봉사에 사용했다.
그가 건넨 명함의 직함은 한국기원 프로기사협회 회장이다. 차 회장은 세계일보와 인연이 있다. 1990년 백두산 정상에서 세계일보가 주최한 ‘기성전’ 1국이 열렸다. 바둑판을 두고 마주 앉은 조훈현 9단과 유창혁 6단 사이로 천지가 보이도록 사진을 찍으려는데 중국 공안이 이를 제지했다. 일행 중 일부가 천지로 내려가 공안을 유인하고, 그 사이 한복을 입은 두 대국자를 급히 찍었다. 화가 난 공안이 필름을 모두 압수했다. 이때 사진기자가 필름 한 통을 몰래 차 회장에게 건네며 “서울까지 안전하게 가져가 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 가져온 백두산 대국 장면은 세계일보와 바둑 전문지 1면에 실렸다. 한·중 수교 전 임시비자로 중국을 방문하던 때의 이야기다.
그는 바둑사에 길이 남을 대국을 치르기도 했다. 1991년 미국 대표로 후지쓰배에 참가했을 때다. 사실상 바둑을 놓은 지 14년이나 되던 참이다. 16강에서 조치훈 9단과 만났다. 백을 쥔 차 회장은 초반부터 치명상을 입어 돌을 던질까 하다가 너무 성의 없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끌려가고 있었다. 어차피 질 거면 최강의 수만 두어야겠다고 마음먹은 뒤, 큰 모양을 만들어 그 안에 들어온 흑돌을 패로 잡는 데 성공했다. 4집 반 승을 거뒀다. 당시 세계 최강 일본의 전관왕을 이긴 것이다.
차 회장은 중국 바둑계에도 기여한 바가 크다. 톈안먼사건으로 중국을 떠나 미국 등에서 활동하던 ‘철녀’ 루이나이웨이(예내위) 9단의 한국 활동을 꾀했다. 이는 한국 여자바둑 부흥으로 이어졌다.
1980년에는 한국기원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처음 방문했다. 당시 양국은 적대관계여서 공식 기국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조훈현 9단과 녜웨이핑(섭위평) 9단의 친선대국을 미국에서 열었다.
1994년부터 3년 동안은 자비를 들여 중국에서 ‘우정배’를 개최하기도 했다. 우정배로 인해 중국의 기전 방식이 한국식으로 바뀌면서 중국의 바둑도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인터뷰 말미에 명쾌하게 내려준 도박의 정의가 인상 깊다.
“잃어서 마음이 아프면 노름이고 아프지 않으면 아닙니다. 잃은 돈을 찾으려고 집착하거나 괴로워하면 노름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놀이에 불과합니다. 잃은 돈을 찾으려는 것은 이미 중독이요, 잊어버리면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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